you met me at a very strange time in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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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이 세계의 투우는 손톱 하나 정도의 간극으로 조각을 영영 만나지 못하고
Also if 조각에게서 떨어져 나온 무명의 핏줄이 해외로 입양되어 뜻 모를 이방인의 감정을 전유하는 청년이 되는데
Conclusion 조각이 두고 간 것들, 이라는 공통분모 아래에서 의뢰인과 해결사가 만드는 관계성

*배도영은 친부 사망 이후 폐쇄병동(반년)-보육원-입양(국내)-특수부대 복무 히스토리를 가진다
**재이는 출생 직후 해외로 입양되어 Jay Stanton이라는 이름을 가진다
***재이와 도영은 한국에서 처음 만난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투우에게 조각의 친자인 재이가 통상적이지 않은 의뢰를 요청하며 진행된다, 이 시점에 투우와 재이는 서로 조각의 주변인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 사실은 추후 서로에게 다분히 고의로 숨겨 둔 정보라는 오해를 촉발한다

phase ①

의뢰 내용은 살인 청부가 아닌 인물 조사로 ⑴ 투우로서는 특화된 분야가 아니고 ⑵ 투우에게는 살인 청부로 유명해져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으며 ⑶ 헛짓거리에 쓸 시간이 없어 본래는 거절해야 하는 건이었다, 다만 사진도 대략적인 정보도 동기 설명도 없이 조사를 요청하는 의뢰인의 태도가 희한한 거고.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의뢰인이,

“이름이나 외형처럼 제가 개인적으로 찾아낸 정보들을 더 드릴 수는 있지만, 검증된 건 아니라서요.”
“뭐 가명이다 이건가?”
“아마 그럴 겁니다.”
“나 이런 일 안 하는데.”
“투우 씨가 다른 쪽 실력이 좋다는 건 알죠. 그래도 당신에게 맡기고 싶어요.”

별로 생각해 볼 제안도 아니었어서 투우는 얇게 자란 손톱 끄트머리나 만진다, 거절하기 직전 생각해 보는 시늉이라도 하는데 뭔가 불현듯 걸렸다.

“다른 사람 알아봐.”
“아뇨. 적임자는 그쪽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확신조의 이유를 말해 주지 않는 게 걸린다는 얘기다. 아무리 거친 업계고 들이받는 성정 티 내는 활동명을 달고 다닌대도, 긴 머리 올려 묶은 의뢰인의 무덤덤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공격성이 거세되는 기분이 들어서 투우는 굳이 더 속셈을 캐내지는 않았다. 대신 다소 충동적으로 수락하게 되는데 후한 선금 받고 나서면서 약간은 후회를 한다.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에 비견되는 의뢰 내용도 문제인데, 의뢰인이 요청의 난이도를 고려해 마땅한 결과를 찾지 못해도 양해하겠다는 의사를 표했으므로 이것은 실질적인 후회의 이유는 아니고,

다른 찾아야 할 여자가 있는데 지금 다른 데 눈 돌릴 여유가 있나 보네,

싶은 자책이 드는 것, 별로 길게 가는 감정은 아니다. 되레 찾아야 할 인물의 추정 나이를 읽으며 내가 쫓는 여자와 동년배구나 싶던 생각이 더 남는다. 투우는 스스로도 잘 납득 못 할 수락의 이유가 이거라면 그냥 좀 웃길 것 같아서 의식적으로 머리를 비웠다.

phase ②

재이의 의뢰를 수행하던 투우는 목표 지점이 본인이 개인적으로 찾던 여자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 이에 투우는 재이를 추궁하고 재이의 친모가 그 여자임을 확인한다 ─ 필연적 불화 발생, 의뢰는 파기 직전에 처한다 ─ 동시에 조각의 흔적을 쫓는 투우를 신성방역에서 발견한다 ─ 이 시점에 그녀는 이미 타계했다 ─ 궤도에서 이탈해 손 실장의 수중에 떨어진 신성방역은 상황 파악 및 후환 방지를 위해 투우를 습격한다 ─ 붙들려 손발톱 죄 뽑혀 가며 고초 겪던 중 투우는 조각이 이미 죽었음을 알게 된다 ─ 탈출, 그는 재이에게 돌아가 부고를 전한다 ─

이제 둘은 할 말이 없다

물어볼 것이 있던 놈과 받아 낼 약속이 있는 놈 둘 다 허공 보고 짖는 개가 되고 의뢰는 미결로 마무리된다 ─ 한편 투우가 누군가의 의뢰로 죽은 무덤 들쑤시고 다녔다는 파편적 정보만을 아는 신성방역은 이런 일의 가장 쉬운 해결책인 의뢰인 제거를 선택한다 ─ 재이가 청부살인 타깃으로 오른다 ─ 이미 마무리된 건의 의뢰인이 한국을 떠날 때까지 동향을 지켜보던 투우는 단 한 끗 차이로 죽을 뻔한 재이를 구한다 ─

둘은 차 안에서 번지는 피 냄새를 맡으며 발이 묶였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phase ③

신성방역 박멸할 생각으로 일부러 덫에 걸린 척 끌어들이는 계획 세웠다가 ─ 무언가 꼬인다 ─ 재이가 폭발에 휘말린다, 오른쪽 눈과 귀의 손상, 외상성 홍채 파열로 인한 시력의 영구적 손실, 청력 저하

(수정 중)

jay

출생 직후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입양을 간 케이스, 현 직업 음악 프로듀서, 성장 배경이 괜찮았다는 수준이 아니라 물질적으로 풍족하고/양부모가 서포티브하고/교우환경이 나쁘지 않았다, 요는 재이가 이 모든 우호적인 환경에서도 본질적으로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감각을 지워 버릴 수 없었다는 데에 있다

도드라지는 문제가 있었다면 차라리 묘한 부적응의 이유를 그곳에 성토할 수 있었을 테지만 없으니 더 어렵다 양아들의 문화적 뿌리를 양부모가 부정한 것도 아니었고(긍정하다 못해 재이는 한국어를 ‘제2 외국어’로 배웠다) 재미한인동포 커뮤니티와도 어느 정도 연을 이어왔는데 결론적으로 무용했다, 입양아들 중에서도 아주 운이 좋은 케이스라는 자각은 나이를 먹을수록 확실해지기 때문에 재이는 어느 시점부터 이러한 ‘이방인’으로서의 감정을 외부에 공유하지 않기로 선택한다, 다만 개인적으로 본인이 본래 누구의 아들이었는지 찾아보게 된다 천착하게 되는 지점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친부모가 범상한 인물들이었다면 금방 답을 얻고,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연락을 하거나 먼발치에서 보는 정도로 해결할 수 있었겠지만 조각이나 그의 생부나 지나치게 철저했다 산부인과에서의 출생 기록 이전과 이후의 기록이 누더기 수준이거나 족족 거짓 정보다, 수중에 도무지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집착하게 되는 것들이 있고 재이는 결착을 보고 싶어 한국행을 선택했으며 최종적으로 투우에게 조사를 의뢰하는데,

투우만큼 적합한 인물은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⑴ 개인적인 조사를 통해 친모가 청부업에 종사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⑵ 투우는 현재 청부업에 종사하는 프리랜서로서 동종업계 정보 입수에 수월하다는 이점이 있고
⑶ 투우와 재이는 동년배다, 재이가 몇 살 많기는 하지만

그러니까 재이도 결국에는 조각의 반응이 궁금했던 거다 옛적에 버린 친아들과 동년배인 남자가 자신을 찾아다닌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과연 아들의 존재를 떠올릴지, 떠올렸다면 투우에게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그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까지 도달할 수 있기는 한지

tuu

니가 좋네 마음에 드네 말 안 하는 타입, 진심에 가까울수록 감추는 타입의 성가신 남자애 ─ 그는 그의 결함을 인지하고 있고 어디서 오는 결손인지도 알고 있다 다만 그의 어려움이라는 게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는 종류라서 그렇다 아무리 평소에 이성적으로,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해도 특정한 대상이나 특정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평소에 그가 규정하는 ‘나’를 무너트리는 반응이 나오는 것, 이 자아정체감의 배신이 그가 불안정한 이유다

爪角

조각과 서로가 가지고 있는 관계를 알게 되었을 때 투우가 재이에게 분노하는 지점은 단순하고 명확하다 기만당한 이들의 얼굴이기도 하고, 즉각적으로 치고 나오는 질투이기도 하고, 재이의 경우 어떠하느냐면 분노라기보다도 공교롭다는 감상에 가깝다 답지 않게 당황하는 것이 처음, 이후 공교로운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살아 움직이는 조각의 목격자를 아무것도 모른 채로 곁에 두고 있었다는 사실이 좀 헛웃음 나기도 하고, 결국엔 그 경험(조각-투우 사이의)을 공유받고 싶어 하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그 역사와 거기 얽힌 해묵은 감정을 몰라서다

조각과의 경험은 배도영이 누구에게도 절대로 말하지 않았던 부분이라 재이가 이걸 대수롭지 않게 물어본다는 사실 자체가 투우에게는 분노의 기폭제가 된다 그리고 막상 투우가 이렇게까지 나오니 재이는 그제서야 상상력이 자극된다 대체 무슨 진득한 순간들이 있었길래 이 정도인지 모르겠다는, 또한 ‘그런 밀도 높은 순간이라고?’ 싶어질 때 흐릿한 질투가 생기기도 한다 이 부분은 재이 본인이 예상 못 한 감정이다 재이가 조각에게 가지고 있던 의문-왜 자신을 버렸는지-은 딱히 원망을 투사하는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표면적으로는 건조한 사실관계 확인이다

입양의 이유를 알아내고 싶었기 때문에 그 일환으로써 조각을 조사하게 되었고 투우를 만났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진실이라는 게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재이가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가 자신을 이방인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기질적 문제이므로

어떤 배경이 그에게 주어졌든, 심지어 조각이 그를 손수 길렀다고 해도 기질이 달라지는 일은 없었을 것인데 이는 그가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 답은 아니다 그렇기에 재이는 본인이 가진 (어쩌면) 문제적인 요소 중 가장 그럴싸한 ‘입양아’라는 속성이 이유가 되어 줄 것이라 무의식적으로 믿었을 것

재이가 조각에게 입양의 진실을 듣는다고 해도 아무것도 해갈되지 못할 것이고 어쩌면 그는 이후에 그냥 조각을 평생 궁금해하며 사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적극적으로 알아보지 않아서 회색 덩어리로 남아 있는 부분을 속 편하게 탓하면서 외면하면서…… 재이는 몸 안에 태생적으로 구멍이 있는 놈이라서 그렇다 그러나 배도영은 이런 재이를 조각이 세상에 남긴 것, 어쩌면 ‘진짜 유일’한 흔적일지도 모르는 것, 으로 인식하게 될 거라는 점이 끔찍하고 좋다 조각은 죽음을 직감했을 때 주변 정리를 하는 종류의 사람이라 남긴 거라고는 이런 실수뿐이다

(위의 서술은 배도영이 재이를 조각의 흔적이라는 이유로 소중하게 여기고 집착하게 된다거나 그런 의미는 아니다 이건 그냥 또 다른 정신병 퍼레이드의 시작일 뿐이다)

detail

톤

재이의 톤은 대체로 일관적이다 각각의 일에 있어서 대응의 태도가 비슷하고 차분하며 그 점은 배도영과 대조된다 드물게 드러내는 식으로 해갈하지만 어조가 크게 격양되거나 분노가 면면에 크게 돌출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새어나오는 것에 가깝다, 평소의 발화는 대체로 문장이 간결하고, 추측보다는 확신에 가깝게 말하는 버릇, 영어 화자들이 한국어로 넘어갈 때 흔하게 보이는 양상, 뉘앙스보다 정보 전달에 특화된 ─ 그의 주변인들은 대체로 살갑고 다정하게 굴 줄 아는 캘리 출신의 전형일 듯한데 그래서 그러한 태도와 버릇이 자연스럽게 이염된 상태일 것이다, 쉽게 말해 사람이 매너가 좋다는 이야기

투우는 환경적으로 개자식들 사이에서 큰 개자식 지망생 수준이기도 하고, 기저에 본인의 결함으로써 인식 중인 ‘죽일 놈의 씨’라는 개념도 있다 콩 심은 데에 콩이 날 텐데 부친의 수준이 그러했으니 본인도 은연중에 그런 것들을 타고났을지도 모른다는 묘한 구석, 그러므로 재이의 ‘나이스’함이 가끔은 투우에게 쿡 찔리는 지점이 되기도 한다 재이의 의도와는 관계가 없다 딱히 근사하게 굴려던 것이 아니라 몸에 밴 제스처이기에

몰이해의 지점

재이 총기소지자격증은 있을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아버지에게 총을 배우는, 수풀 속에서 엽총 들고 앉아 있는 그림이 그려진다 그의 부친은 교육의 일환으로 잡은 동물을 손질하는 법까지 가르쳤을 것이다 충분한 사랑을 노력하는 부모인지라 이런 지점이 배도영을 긁고 지나가기도 한다…… 어릴 때 보이스카웃이었던 제이 스탠튼, 겨울 별장에 부친과 사냥을 간다 본가와 다르게 영하로 손쉽게 치닫는 추운 지역에서 털옷을 입은 부자가 눈밭을 가르며 핏자국 궤도를 남긴다 이런 평범한 이야기들을 듣는 배도영은 좀 웃기다 이 새끼의 디폴트값인 예의와 다정이 어디서 연유했는지 그려져서

한국에서의 격동 이후 둘을 생각한다 때는 추수감사절 마치 그리기라도 한 듯 화목한 캘리포니아의 가정집 배려 넘치는 사람들, 사이, 허공에서 뚝 떨어진 놈처럼 앉아 식탁 위 칠면조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배도영과 대화 중간중간 그런 그를 바라보는 재이 ─ 투우의 입장에서 보는 재이는 알면 알수록 미흡함 없고 사랑받는 데에 익숙하고 사랑 주는 것도 능숙해 보이는 놈이라, 대체 뭐가 그렇게 부족해서 이역만리 고국에 혼자 돌아와 생모를 찾아다니는지 납득이 안 된다 복에 겨운 놈이다 싶은 거다 물론 그럴 만하다 투우의 역사를 생각해 보면

어느 시점 재이-조각과의 관계를 알고 난 뒤 투우에게서는 그동안 재이에게 긁혔던 것들이 툭 튀어나오기도 하고 순수하게 이해가 안 되기도 해서 “넌 그런데 왜 그렇게 그 여자 찾아다녔어? 그럴 것도 없잖아.” 묻는데 곧장 재이 얼굴에 순간적으로 지나간 표정 때문에 아차 한다 사실상 재이는 그 질문을 피해서 도망 다니는 사람이라 그렇다, 그런 식으로 서로를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공란이 있는 이들

재이는, 사실 본인이 불안정하고 능숙하지 않다는 것만큼은 배도영에게 들키고 싶지 않다 이건 배도영의 선호 사항과는 별개이며 개인적인 문제인데, 반면 배도영은 함께 밑바닥을 보아야 안정감을 얻는 타입이다 기브 앤 테이크 혹은 인질극과 비슷하다 이 지점에서 두 사람이 충돌한다

균열, 자격, 납득

페이즈 3 이후의 배도영, 이렇게 재이가 맞춰 주는 세상 속에서 타성에 젖어 살다가 본인 마음이 생각보다도 커졌다는 사실 자각을 못 한다 그러다 그게 묘한 방향으로 돌출되는데 이건 재이도 해석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묘한 방향: (너도) 기분 좋은 거 맞아?

이를테면 재이가 정신 못 차리는 얼굴이 보고 싶다는 욕망, 그런데 그게 자극 때문에 맛이 간 얼굴인지, 아니면 얘도 이 관계에서 어떤 정서적인 소득이 있다는 증명을 원하는 건지 배도영은 구분을 못 한다, 실상은 두 가지 모두 해당한다 그저 배도영이 하나의 선택만이 명료하고 확실하다고 여기는 타입의 인간일 뿐

배도영은 (꾸준히) 재이가 왜, 굳이, 여기서, 본인과 이렇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관계는 어떤 자격이 개입하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니가 너라서 좋아하는 건데도…… 열심히 스스로를 키운 배도영, 나름대로 자의식도 있고 생각보다 자존감도 있지만 루퍼트 왕자의 눈물마냥 특정 부분에 조금만 기스 나도 와장창 무너지는 종류

그러나 재이 스탠튼은 필요하다면 정확한 표현으로써의 납득도 시켜 줄 인간이고, 가늠해 보다가 얘는 이런 표현이 더 잘 먹히겠다 싶으면 통상적이지 않은 방식도 선택할 놈이다 예를 들면: 정말 뒤지게 좋다는 뜻을 표현하기 위해 폭력

다만 이 건이 이런 식으로 해결되기 이전, 배도영이 왜 이러는지 파악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재이는 설마 그런 부분에서 배도영이 취약할 줄은 몰랐다 이건 정말 티를 안 내서 그렇다 배도영이 겪은 일을 알았다면 유추가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으나 가장 중요한 건 본인 입으로 듣지 않았기 때문에…… 언젠가 진심으로 화난 재이, 서늘해진 얼굴로 “문제가 있어요?” 하는 순간이 온다

내가 널 애정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꾸 기브 앤 테이크로 생각하다니 그러면 안 된다 (X) 기브 앤 테이크로 생각하는 놈이군 그럼 니가 알아듣게 오백 가지 방법론을 써 보겠다 얻어 걸릴 때까지 (O) 이게 재이 입장일 것인데, 재이가 그렇게까지 화내는 걸 본 배도영은 모종의 저릿함을 느낀다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이에게서 균열을 이끌어 내는 일 자체가 존재의 간섭력을 증거함과 같고, 거기 더해서 배도영이 가진 최악의 버릇-같이 낙화하는 것에 위안을 느끼는-이 작용했을 것

play

keyword ─ BDSM

배도영은 무난한 취향, 섹스-폭력-해소의 연결고리가 없고 충동의 해갈을 굳이 침대 위에서 해결하지 않는 타입일 것, 따지자면 그가 수행하는 의뢰가 분출의 통로가 된다 언프로페셔널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단지 의뢰 수행 시 필연적으로 자작해야 하는 디테일에 사심을 담는 데에 가감이 없는 편이다 그건 상흔을 내고 싶다는 방향성 없는 분출이 아니다 도영에게 살해는 업무고 현대인이 근로를 통해 자아를 실현하는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내듯이 배도영도 나름의 타협을 본다 그러니까,

사람 죽이니까 기분 좋다 (x)
죽이는 김에 뽕도 뽑고 님도 보고 (o)

이런 도식이다 해갈은 착각이지만 그냥 넘어간다

그러므로 요지는 배도영이 베드 위에서 굳이 난폭하게 굴거나 변태적인 취향이 있지는 않다는 것, 까져도 살짝 까져서 마데카솔 바르면 흔적 안 남는 타입이라는 것인데, 재이는 확실하게 걸레인 쪽

캘리포니아의 볕에 그을린 삼십 대 잘생긴 남자가 수요가 없기가 어렵다 재이의 경우 나갈래요? 를 굳이 거절하는 타입이 아니고 가는 사람을 막는 편도 아닌데 그의 가장 도드라지는 특성은 섹스로 관계를 규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한 번 쳤다고 니 거 내 거 하는 성격이 아니다 살 붙이는 데에 천년의 사랑이 필요하지 않고, 오히려 성행위라는 항목 안의 바리에이션에 더 흥미를 붙이는 인물로, 이쪽도 섹스-폭력-해소의 연결은 아니다 섹스-( )-해소에 가깝다 공란에는 그때 그 순간에 필요한 것들이 들어간다

삽입 행위가 트로피고 관심의 종착인 또래 남자들 사이에서 굳이 나서거나 비하하거나 본인과 대조할 정도의 열정은 없다 그냥 속으로 ‘난 부족한 편은 아니지……’ 하고 넘기는 조용한 걸레, 성관념에 억압되어 비밀로 하는 것은 아니다 구태여 얘기하는 성정이 아니고 전시의 필요도 못 느낀다

최초의 충돌은 아마 재이가 방역 타깃이 되고 난 후일 것

둘 다 여러모로 몰리기도 했고, 상황이 좆같기도 하고, 발이 묶였다는 동질감과, 직전까지 갈등이 있어 껄끄럽기도 하며, 죽다 살아나 귓가에 울리는 아드레날린 등이 이유가 되어 줄 법하다 재이가 긁었을 것이다 “내 얼굴 보고 누구 떠올리는 건 아니고?” 그대로 배도영이 턱주가리를 날리고 불씨 튄다 다음날 깼는데 엎드려 자는 재이 뒤통수 보고 머리카락 때문에 여자 같다는 생각을 하는 현직 살인청부업자가 있다 시선이 등판으로 내려가자마자 그 생각은 싹 사라진다

제이 스탠튼은 활자 그대로의 의미로 변태적인 취향을 가진다 다만 야릇한 죄의식이 무의식적인 페티시의 형태로 발현되는 건 아니다 재이는 본인의 취향과 그 근본과 원인을 머릿속으로 성문화해 놓는 타입의 인간이라 언제든 필요한 때에 수납장을 꺼내 곧장 적용시킬 줄 안다, 그러므로 따지면 성향자의 플레이에 가까운 형태다 본래 성향이라는 것은 만연한 오해와 별개로 고삐 없이 날뛰는 행위를 권장하지 않는다 따지자면 고삐를 어느 정도까지 쥐어야 날것의 욕망을 가장 비슷하게 ‘모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치킨 게임이다

넘겨서, 첫 인터코스는 투우재이일 것이고 사유는
⑴ 배도영이 동성 관계에 익숙하지 않고
⑵ 재이에게 당시 필요했던 것이 그런 쪽이라서

이름값 한다고 들이받던 투우에게 재이가 천천히 하라는 의미로 어깨를 쓸어 쥐는데 무슨 회초리로 손등 맞은 애처럼 얌전해지는 그림을 생각한다

이건 좀 웃겨서 백업하는데
재이: 그냥 나이스하게 군 거임
투우: 뭔가 짜증 남 걍 개걸레 같기도 하고

한편 배도영 삽입 중에 표정이 존나 안 좋은 거지 속이 안 좋거나 이 행위 자체로 느끼는 불쾌감이 아니라 어딘가 힘겨워 보이는 상태로 인상을 쓰고 있는데, 재이는 이럴 때 말로 지적하는 타입이 아니다 인식하지 않는 새에 감각을 분산시켜서 채널을 돌린다 입매를 더듬거나 몸 어딘가를 두드리거나…… 첫 인터코스에 재이의 취향이 크게 반영되지 않는 이유는 그가 배도영을 봐줘서가 아니고 초장부터 그래 봐야 재미가 없을 것 같아 그렇다 결국에는 투우 스스로, 본인이 폭력성을 드러내도록 조타되었다는 것을 어느 순간에 알게 되는데, 그때는 이미 늦었다, 어떤 반응을 보이든 씰 뜯겨서 반품이 안 된다

재이의 권유로 본디지 시도해 보는 배도영, 애초에 이런 쪽 정보가 없으니 변태같이 묶고 박고 그런 거겠지 싶어서 OK 했는데 여기서 재이가 말한 본디지는 순수 육체와 매듭쇼라는 걸 뒤늦게 알아 버려 살짝 당황스럽다 이건 뭔가 성행위-유사 성행위가 아니라 공예…… 같은 거 아닌가

근데 시간 갈수록 몸 조이고 불편한 와중에 집중한 얼굴로 매듭질 하는 재이 일방적으로 보고 있자니 이상해지는 기분, 상반신 마무리하고 줄 확 잡아서 프레임에 거는데 배도영 몸 훅 당겨지면서 들리는 바람에 작게 소리 내니 그제서야 눈 제대로 마주친다, 배도영 자연스럽게 긴장해서(그는 대부분 이런 몸 쓰는 상황에 긴장이 없으므로 이례적이다) 눈썹 띄우는데 재이가 줄 고정시키고 흐릿하게 웃다가 검지로 어깨선 따라 훑는다

“도영 여기가 예뻐서 잘 어울릴 것 같았어요. Collarbone.”

숨 괜찮아요? 이제 내려갈 거예요, 문제 있으면 말해야 돼요, 하는데 배도영 고개 푹 숙이면서 한숨 내쉰다 갑자기 귓가에 피 몰려서

처음에는 서랍에서 마끈 꺼내는 거지 색도 안 들어간 (것을 배도영 전용으로 염색까지 마칠 걸 생각하면 귀엽기도 하다) 원래 변태들은 사 와서 삶고 다 손질해…… 하여간 배도영 공복으로 앉아서 시작 전 스트레칭하는데 그때는 이게 좀 웃기다고 생각했다 재이 진지한 게 웃겨 가지고

사실 시도하기로 했던 것도 잊고 있었다 ‘이 새끼는 하자고 해 놓고 왜 아무런 제스처가 없지’ 하다가 까먹었거든 근데 2~3주쯤 뒤에 갑자기 재이가 준비 끝났다고 냅다 앉힌 거고 배도영은 순간 좀 아득해졌다, 재이가 팔에 끈 슥 문지르면서 “이 정도 rough함이에요 괜찮아요?” 묻는데 그게 뭐 중한지 이해를 못 한다 그래서 그냥 끄덕거렸는데 도영이 피부에는 좀 거친 텍스처였다

다 끝나고 몸에 남은 자국 만지던 재이가 다음에는 더 부드러워야겠다고 말하는 거 멍하니 듣기나 한다

보기 좋아요 몸이 예뻐서 궁금했어요, 재이 스탠튼의 이런 말들은 하나같이 무드 잡겠답시고 하는 게 아니라 진실로 순수한 감상이다 게다가 어디가 예뻐서 이런 각도로 보고 싶었다니 평소에 그 부위 보면서 별말 없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아닌가, 살면서 이만큼 전시되고 대상화되어 본 적 없는 배도영으로서는 유독 감당을 못 하기도

리빙 포인트: 본디지에서 묶는 쪽은 리거 묶이는 쪽은 로프버니인데
재이가 배도영 버니라고 부르면서 코 찡긋 웃는 것 생각하고 살짝 죽음

재이 성격상 이 ‘역할극’의 룰과 세이프 워드 숙지시키는 일에 있어서 정말 철저했을 것, 말 안 나오는 상황일까 봐 세이프 제스처까지 정했을 텐데 진지한 얼굴로 “손에 버튼을 들고 있을래요?” 하는 재이에게 배도영은 아니 그 정도겠냐고 ㅋㅋ 하며 웃어넘긴다 알려 줘 봤자 배도영은 행하지 않는다 말하면 지는 거라는 생각을 해서 그러한데, 이건 승패가 존재하는 구조가 아니며 의미 그대로 세이프 워드다, 라고 아무리 재이가 교수처럼 줄줄줄 설명해 봤자 결과는 똑같다 배도영은 플레이에 흥미가 있던 당사자도 아니고 역할과 규칙의 감각을 해 본 적도 없기 때문에

재이는 배도영의 성격을 알고 있으므로 곧이곧대로 들어 처먹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미리 예상한다 그러면 오기로 싸물지도 모른다는 걱정 또한 자연스레 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일부러 페이스 조절해 가며 중간중간 배도영 컨디션을 확인, 하지만 배도영은 그걸 또 2차적인 긁? 로 받아들이는 애새끼라

배도영이 버티고 있고, 배도영이 버티고 있다는 걸 재이가 알고, 그래서 적당히 끝내야겠다(애초에 재이가 원하는 선까지는 가지도 못했다) 생각하면서 마무리하는 중, 마지막으로 왼쪽 무릎만 접게 만들려고 몸 숙이면서 가깝게 앉는데 배도영이 눈에 띄게 뻣뻣해지는 거다 그래서 뭐지, 하던 재이 배도영 지금 흥분한 건지 뭔지 발기한 거 보고 눈썹 까딱

묶인다는 건 통제력의 완전한 상실이 아니라 통제력의 완전한 이양이라 더 곤두서기도 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임팩트가 크고 그러다 보니 겁먹은 애처럼 얼어붙는 것도 없잖아 있고(이 부분이 배도영에게는 최종 긁히는 지점) 와중에 예민해 죽겠는데 재이 손길이 너무 평범하고 무감한 태도에 가까운 것이다 키스를 하거나 성감대를 스치거나 그런 게 없다

근데 섰다 자존심 다 깨지는 소리

재이는 좀 등골이 오싹해진다 이 고집 있는 연인이 입 다물고 버티길래 아무래도 이건 불호에 가까운 것 같다는 생각 들던 차인데 귓등 시뻘게져서 뻣뻣해지는 게

배도영은 브랫, 프레이, 이쪽의 다소 프라이멀 계열(주종 관계 X 걍 개처싸우는 과정 자체가 중요)이고 애초에 재이가 배도영한테 주종 계열은 권하지도 않았을 것 같아서 뻘하게 웃김 (사유: 딱 봐도 아님) 근데 또 재이 너무 제어의 남자라 배도영이 발로 툭툭 건드려 보는 상상+너무 그린 듯 나이스하게 구니까 ‘이래도?’ 의 마음

재이는 덩치 있는 남자고 힘도 있고 몸도 쓸 줄 알기 때문에 보통 플레이에서 주도하는 역할을 많이 했을 테고 그게 익숙한 놈일 것이다 신체 조건 자체가 물리적으로 그를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는 종류의 파트너 찾는 게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그런데 이제 배도영을 만났잖아? 그동안 세상이 그를 탑 성향자로 고정시켰지만 배도영이 판에 끼면서 개판프라이멀 가능해졌다는 게…… 통제를 놓치는 경험이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거지 자기 몸이라는 가장 좋은 연습 재료를 내주고 알려 주면서

이번에는 귀여운 것과 위험한 것 두 가지가 있어

귀여운 것: 본디지 가르쳐 주는 재이, 근데 이제 배도영이 리거 롤이라 테이블에 앉아서 기초 매듭법 알려 주는데 너무 공부하는 분위기라 배도영 좀 웃음 근데 이 녀석 킬러고 특수부대 출신이라 곧잘 습득한다 문제는 호흡을 맞추는 게 요지인데 그건 모르고 그냥 꽉 묶기, 고정하기, 이런 강강강강 타입이라 몸 내주던 재이 손에 피 안 통해서 의료 가위로 로프 존나 잘라 내고 급하게 팔 주무르는 시간 가진다 배도영 미간 좀 찌푸리면서 감각 돌아와? 묻는데 그런 배도영 얼굴 보고 있던 재이가 미간에 코 톡 받으면서 네, 해서 둘 다 웃는다

위험한 것: 감각 통제 플레이 하는데 이런 건 소통을 못 하니까 배도영한테 세이프 워드 대신 버튼을 하나 쥐여 준다 근데 하필 그게 고장 나서 배도영 코 빼고는 다 틀어막힌 상태에서 처박히다가 혼절을 하실 뻔, 재이가 겨우 알아차려 멈춰서 다행인 일이었고, 즉시 중단, 재이는 이럴 때 괜찮냐고 묻는 타입이 아니다 괜찮다는 대답을 유도하는 꼴이 될 수도 있어서 그렇다 가만히 들여다보는데 배도영 얼굴이 다 풀려서 숨 몰아쉬다가

“복상사할 뻔했네.”
“‘복상사’가 뭐예요.”
“…….”

그러고서 배도영 상태 괜찮아질 때까지 기다린다 보통 플레이는 애프터 케어가 정말 중요하지만 배도영이 지금은 터치를 싫어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일단 질문 “옆에 있을까요?" 근데 배도영 뭐라는 거야 싶은 표정으로 존나 당연하게 어, 대답해서 어쩐지 재이 마음이 울렁울렁, 사실 플레이를 자주 하는 편은 아닌데 어느 시점부터 배도영이 흥미 붙이고 이것저것 시도하는 티가 나서 뭔가 찌릿해지기도 한다

재이 스탠튼의 디폴트값이, 사람마다 한계치가 다르고 버튼이 달라서, 모두를 어느 정도는 깨지기 쉬운 것 취급하는데 여기서 배도영도 늘 기기묘묘한 기분이 되는 거다 누구도 본인을 이렇게 다룬 적 없어서

진짜 못 하겠을 때 나오는 배도영의 디테일한 행동 같은 거, 그러니까 그는 너무 버틴 나머지 결국 기진맥진해지는 타입이다 싫어, 아파, 표현하지 않고, 차라리 주변에 있는 걸 세게 쥐어 잡는다거나 입술을 악문다거나, 하여간 사람이 고통스러울 때 그것을 본능적으로 분산시키려 하듯이 어디 하나에 감각을 집중하는 식 ─ 참고로 이건 그의 기질이라 재이가 아무리 어화둥둥 섬세하게 접근한들 끝내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정말 못 하겠을 때 나오는 버릇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를테면 손사래 치듯이 힘 다 빠진 팔 허공에 젓는 거, 그런 건 정신없을 때나 나오는 행동이라 별다른 의도가 없다 언제는 앞도 제대로 안 보이는 상태로 휘적휘적 움직여서 재이 뺨을 툭 친다 그러면 갑자기 입술 얻어맞은 재이가 아픈데요, 하고 쪽

한 번은 기력 조금 남아 있는 상태로 팔 휘두르던 배도영의 눈먼 주먹이 재이 입가에 제대로 들어가서 피를 본다 정작 재이는 아무 생각도 없는데 배도영만 머쓱해져서 그 이후로 중간까지(그러니까 본인이 컨트롤 되는 선까지는) 손 머리 위로 올려서 애먼 시트나 즙 나올 때까지 짜는 습관 생긴다면…… 이 이유를 알아차린 재이가 막 웃다가 그냥 안아 달라는 식으로 목덜미에 얼굴 툭툭 치받는다면…… 배도영은 재이가 왜 이러는지 이해를 못 하는데 그런 와중에도 재이 머리칼이랑 숨소리 닿는 게 너무 이상해서 심장이 간지러워지고 만다 아 왜, 하면서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투덜거리지만 몸에 머리 처박고 있는 재이에게는 배도영 심장 소리가 다 들린다

탑 포지션에서는 상대에게서 ‘망가지는’ 표정 이끌어 내기가 비교적 쉬운데, 그건 엉망이고-불안정하고-재이가 들키기 싫어하는 종류의 것이며, 동시에 투우의 입장에서는 목도를 욕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언젠가의 배도영은: 좋게 말하자면 과하게, 솔직히 말하자면 폭력적으로 굴어 본다

난 늘 이도현 입매를 보면서 찰흙 반죽을 얇은 칼로 그은 것 같다는 감상을 갖는데 배도영도 그런 무기질의 감상을 종종 받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이끌어 내고 싶다는 충동도 있고

예를 들면 플레이가 아니고, 그러니까 어떤 부분들에 있어서 전혀 합의가 되지 않았고 그저 지극히 일반적인 섹스로 시작, 하기는 했다 그런데 배도영이 자꾸 신체의 감각이나 리듬의 주도권을 가져올 만한 곳으로 손을 가져간다거나 (감각 천천히 통제해서 유도하는 방향 X 코, 입, 목, 하여간 굉장히 즉각적인 데로) 호흡 자체를 맞춰 주지 않는다거나, 듣지 않는다거나, 단적으로 편하게 표현하자면 ‘거칠게’ 한다

이렇게 되면 역할 수행의 게임이 아니게 된다

재이 스탠튼의 본질과 연결된 rule-role이라는 키워드, 그를 구성하고 있는 것,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필드에 아예 올려 주지도 않은 채로 무법지대에서 무너뜨리는 것: 배도영의 고양감은 여기서 온다

배도영 페이스에 질질 끌려가던 재이, 평소처럼 달래는 시도도 안 먹히고 그냥 모든 게 차단된 상태로 과부하만 오다가 어느 순간 확 불안정한 낯이 된다 “도영 화났어요?”

호흡은 엉망이고 그래서 목소리 조절도 잘 안 되는 와중 그 소리 듣는 배도영은 뱃속이 저릿해지면서 뭔가 아차, 싶다 근데 뭐가 크게 잘못됐는지는 자각이 없는 수준이다 손으로 막 뭉개어 모양을 변형시켰다는 그런 고양감, 이걸 이렇게 해도 되는가 싶은 브레이크, 그러나 너무 가까이서 들이받는 중이라 이미 완전히 짧아진 시야

재이는 규칙과 손질로 만들어진 인간이라 이런 상황에서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사과도 한다, 잘못했다고, 한 것도 없으면서 횡설수설

요점은 이 모든 걸 재이가 의도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재이는 투우가 스스로 폭력성을 드러내도록 조타해 낸 바 있지만 이런 식의 분출은 전혀 의도한 바가 없다, 투우에게 이런 욕망이 있었다는 건 몰랐기 때문에

재이의 애티튜드든 그가 소유한 것들이든 그의 나이스한 부분들을 투우는 가끔 견딜 수 없어 한다 어느 정도는 본인이 갖지 못해서 느끼는 열등감이기도 하고, 영영 취득 불가능한 요소들이라 받는 박탈감이기도 하다 그래서 (조금 유치한 말이지만) 얘 나랑 있기에는 조금 근사하지, 같은 생각도 했고

그게 그가 가지는 나이스한 부분을 모두 꺾고 점령하고 싶다는 파괴욕으로 온다면, 그리고 그가 배도영의 이런 메커니즘을 알게 된다면 재이는 아주 곤란해진다 재이는 본인이 실은 나이스하지도 무결점의 인간이지도 않으며 코어 자체가 불안정하다고 여긴다 그리고 이걸 들키고 싶지 않아 한다 관계에 악영향이 갈 거라고 생각해서

이게 재이의 터무니없는 망상은 아닌 것이, 실제로 배도영은 ‘대체 너는 뭐가 문제냐’는 식의 얘기를 몇 번 했었다 왜 이렇게까지 친모를 찾냐, 입양이 대수냐, 등등, 따라서 재이가 생각하는 본인의 최대 약점 ‘어딘가 이상한 나’를 목격당한다면 다시 몰이해의 연장이 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아예 티를 내지 않겠다는 은연중의 다짐 같은 게 있었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그래서

배도영이 파괴욕을 드러냈을 때 혼란스러워진다 동시에 그때가 되어서야 아직 완전하게 서로를 신뢰하거나 무한히 애정한다는 확신이 없다는 것도 깨닫는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에는 견고한 애정이 기반해야 ‘나의 어떤 모습이든 전부 보고 싶은 것뿐이구나’ 하고 생각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 시점의 재이에게는 묘한 공격으로 감각되는 바

이날의 이미지로는 이런 게 있다: 모로 돌려진 재이 얼굴 옆통수를 배도영이 손바닥으로 꾹 눌러 고정시키는데 하필 멀쩡한 눈이 아래쪽이라 시트에 파묻혀서 거의 안 보이고 소리도 먹먹하고, 배도영 부르는데 성대 진동으로만 본인 목소리가 느껴지는 그 감각, 순간 섬찟해서 어깨가 긴장한다 배도영은 바디 제스처를 잘 읽는 타입이라 재이 뻣뻣해지는 걸 즉시 알아차리기는 한다 다만 너무 흥분 상태여서 잘못 해석, 아니, 정정 ─ 읽기는 맞게 읽었다 근데 그럼 멈춰야 하는데 본인이 너무 원하던 그림이라 변압이 아예 그리로 가 버린다 재이는 이름 부르고 달래 보려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긴장한 몸 힘 푸는 일에만 집중하느라 말이 없어진다 배도영은 손발 어지러운지 꼬이는 재이 보면서 충족감 느끼느라 다른 사인을 못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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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t 캘리포니아의 재이 스탠튼

Outside they say it's happy here but it's depressing
Too many pretty faces catching my attention
So I look at them
Remind myself in this smudged glasses
That pretty isn't everything, you punk-ass
Always hard to see past the surface when it looks so perfect
But our eyes will disguise dirt on purpose, you listening?

cast 재이 스탠튼과 만나기 전의 배도영

Yeah, we did it
We didn't
It's all getting better now, is it?
It isn't

cast 뜻 모를 이물감을 견디다 못해 한국으로 향한 재이 스탠튼

Well, mother, what the war did to my legs and to my tongue
You should've raised a baby girl, I should've been a better son
If you could coddle the infection, they can amputate at once
You should've been, I could have been a better son